요새 인디게임이 엄청나게 뜨잖아.지금은 인디게임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엔 그 명칭 안 쓰고 동인 게임이라고 불렀어.
여느 창작형 덕후와 다를 바 없이 나는 게임 제작에 대해 관심이 엄청 많이 있었고,카뮤라는 게임 제작 커뮤니티를 맨날 들락날락 했었음. 관심있을 시기에 안 본 글이 없을걸.
그때 구직할 때 꼭 피해야 할 동인게임팀 이라는 글이 있었는데,반응이 꽤 좋았음.글 내용이 대충 뭐였냐면..."시나리오 라이터가 팀장일 경우, 팀장으로서의 자질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됨. 자기 세계관이 최고라는 듯이 무작정 밀어붙임. 결국 흐지부지 막장이 되고 팀이 해산됨." 이런 뉘앙스였을 거야.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이 없으니 동의는 안 되는 주장이었어. 근데....장장 5년간 저 예시에 부합하는 어떤 사람을 지켜보게 되었고,결국엔 이 말이 동인게임(지금은 인디게임이지.) 팀에 들어가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정말로 좋은 팁이라는 걸 알게 됬음. 일단 그 사람 이야기를 해볼게. 거의 10년이 다 돼가는 일이라 기억을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 시나리오 라이터를 겸하는 팀장을 본 건 모 커뮤니티 사이트 게임 게시판에서였음. 자기가 직접 여성향 오토메(연애 시뮬레이션)게임을 만들어 봤다면서, 괜찮다면 해 달라고 체험판을 가지고 왔어. 그러면서 cg를 그릴 일러스트레이터도 같이 구한다고 구인글도 함께 적어놓음. 제작툴은 아마 네코였을 거고,시나리오는 얘가 담당.게임에서 사용한 스탠딩 cg는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무료/유료로 배포하는 걸 사용.
해 봤는데,재미는 없었음.그냥...뭐..그래도 한국 게임이잖아? 자국에서 별로 흥행하지 않는 장르의 게임이 나온다는데 누가 결사반대하겠어 다들 좋아하고 응원하지...? 그래서 힘내라는 덧글을 달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덧글을 찬찬히 보는데, 어떤 사람이 스탠딩 cg가 너무 이쁘다며 누가 그려준 거냐고 덧글로 물어보더라구. 근데 대답이 뭐였게? 절친이 그려줬다고 하더라. 배포 시작한지 몇년이 지난 무료 소재를 지금 만들어진 게임 때문에 그려준 거였다고? 혹시나 해서 얘의 개인 홈페이지랑 그 일러스트레이터 홈페이지를 찾아봄. 지금은 SNS 맞팔로 친분을 과시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홈페이지 링크였어. 당연하게도 서로의 홈페이지 링크는 없었음.
좀 당황스럽고 신기하더라.굳이 이런 걸 거짓말 해야 하나? 위에 적었지만,얘가 사용한 일러스트레이터의 cg는 무료로 배포된 거임. 심지어 출처 표기도 필요가 없어. 그래서 아직도 일본 동인게임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거고. 동인게임 바닥에서 좌로 구르고 우로 굴러본 사람들에게 금방 들킬 거짓말을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하다니....이 일 때문에 얘한테 엄청난 흥미가 생겨서 자주 게임 게시판을 가게 됨. 진행상황을 한 개 정도 올리고 소식이 한참 없다가,얘가 올린 게시글이 갑자기 전부 사라짐. 혹시나 내가 제목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 싶어서 스크랩함을 가서 봤는데 게시물이 없대....이 뜻은 뭐냐면 중단한단 말도 없이 엎어졌다는 거임....
이후에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모 만화의 드림 게임을 제작한대. 시나리오는 당연히 얘고, 이번엔 cg를 그려줄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해 놨더라. 공지 테이블을 보니 제작 진행 상황이 꾸준히 올라오더라고. 뭐 이번에는 나오겠지 싶었어. 근데 내가 이즈음 동인게임에 대해 흥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구경하는 것을 그만뒀음.
그리고 몇년 지났나, 갑작스럽게 덕질하는데 얘를 다시 마주치게 됨. 내가 좋아하는 만화로 드림게임을 만든다고 하더라. 얘가 예전에 제작하던 것들은 전부 무료 게임이었는데, 이번건 상업 판매용이었어. 그래서 일러스트,세계관,스토리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 뽑았음. 게임 소개 사이트도 여느 상업 노벨 게임 사이트 못지 않게 좋아보였고. 어 그럼 저번에 만든다고 한 게임은? 내가 봤던 제작상항 그대로 멈춰있었음. 홈페이지도 까먹은채로 잊혀진거지..
이후 해당 만화를 탈덕할 즈음에 문제의 저 게임이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걔)와 서브 시나리오 라이터의 불화로 인해 제작이 늦어지게 되었고 문제의 팀장(걔)은 책임을 지고 빠지게 되었으며 완성 후 게임을 무료로 풀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단 걸 알게 됨. 물론 당연히 이 게임은 만화가 완결이 날 때도 안 나왔고 지금도 안 나온 상태일 것임. 참고로 여기 참여한 인원들 장르 싹 갈아타 버렸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래잖아..
봐,게임이 내가 본 것만 해도 총 세번이 엎어졌음.이 정도 수준이면 동인게임쪽에서는 예의주시 블랙리스트 감인데, 이쪽에선 얘를 아무도 몰라.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이 언급되는 걸 본 적도 없고,관련한 사건 정리글도 하나 본 적이 없어. 얘가 주로 활동했던 장르 안에서는 알음알음 다 알수도 있겠고 에버노트ㅋㅋㅋ 입장정리글이 나왔었을수도 있겠다 싶지만...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 (나 어제 리퍼러에 해당 장르 티스토리 찍혀 들어와서 머리 짚는 중임) 관련해서 찾아보는 걸 정말 내켜하지 않음...하여튼간에, 동인게임쪽 한정해서 이게 무슨 뜻이 되냐면 팀장 할 자격 없는 사람이 팀을 모집하고 있어도 나는 그 사람을 모르고 누가 '그새끼 병x이에요'하고 알려주지도 않기 때문에 들어가서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야 모른다는 거.
그럼 x신 안 걸릴 때까지 팀들 들락날락 하면서 도전하란 소리일까? 시간이랑 감정 소비하면서? 대답은 '아니오'고, 저 '구직할 때 꼭 피해야 할 동인게임팀' 글만 머릿속에 박아두고 있으면 돼. 팀장이 자기 스스로를 '디렉터'로 정의하고 있는 팀만 들어가. 자기 자신을 '시나리오 라이터 혹은 소설가'로 정의하고 있으면 절대로 그쪽은 쳐다도 보지 말자.